강천사 바로 아래에는 절터가 있다.
이 절은 신라 법흥왕때에 세워졌으며 삼층석탑과 돌확, 기와편들을 통해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법등을 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어느 때인가 절은 폐사가 되었는데,
삼층석탑에서는 일제시대 때 사리가 나왔으나 총독부에서 가져갔다는 기록만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인 1945년 7월 15일 노노당(老老堂) 대휘(大徽)선사가 옛 절 터 위에 초막을 짓고 불상을 모시면서 소악사를 강천사라고 이름을 하고 다시 송학산에 부처님의 도량을 다시 세웠다.
강천사를 사명을 풀이하면 江(이 강산에서)天(으뜸의 도량)이다 라는 뜻이다.
노노당 대휘선사는 어려서 동진출가 하시여 금강산 마하연, 묘향산 법왕대, 중국 오대산 수행하시고 귀국하시어 평생 능엄선을 주창하신 분으로 생전에는 호랑이를 타고 다닌 분으로 알려질 만큼 신통이 자제 하셨다.
대휘선사는 일반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지만, 청담(靑潭), 영암(暎巖), 성철(性澈)스님 등 근대의 고승들과 도반으로서 경학에 밝고 계율에 엄했으며 선서화에도 능했던 스님이셨다. 선사께서는 양산통도사와 의성고운사주지 소임과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을 역임하시기도 하시며 이어서 선사는 1947년에 이곳 강천사에 관음전을 인법당으로 지었으며 이후 대광명전 나한전 독성각 산신각을 중건하였다.
이 자리는 강원도 영월 법흥사(法興寺), 정선 정암사(淨巖寺),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중간 지점에 해당되는 명당터 라고 하였으며 선사의 기도와 수행의 원력으로 나한기도 영험도량으로 알려져 인근에 불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기도 가피를 입기도 하였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러오는 불자들이 있다.
1981년에는 산주인 이우형거사 내외와 많은 불자들의 도움과 신심으로 도로와 전기를 가설했으며 오늘에 이 도량은 많은 불자들의 기도와 원력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한 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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